옛날에는 삼서 육례(三誓六禮)라 하여 혼례의 격식(格式)이 매우 엄격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구식 결혼시식이라고 해서 옛날 격식 그대로를 따르지 않고 약간 신식을 가미하여 일생에 단 한번 뿐인 대사를 우리 나라 고유의 격식으로 올리는 젊은이들이 많으며 이 단원에서는 우리 나라 고유의 풍습을 알아 두는데 참고가 되게 하기 위해 옛날의 혼례식 그대로를 소개 하기로 한다.
남자 나이 15세로부터 30세, 여자는 14세로부터 20세에 이르면 부모는 자녀들의 혼인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혼인 할 사람이나 혼인을 주장하는 호주가 기년(朞年) 이상의 상중(喪中)이 아니어야 혼인할 수가 있다.
혼기를 맞이한 신랑 또는 신부감을 둔 집에서는 먼저 사람(중매인)을 상대편에 보내서 당사자의 인물, 성행(性行), 학식, 가법(家法), 형세 유무(形勢有無), 인품(시부모에 대한) 등을 알아보며 조건들이 좋아서 두 댁이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면 정혼(定婚)하는 것이니 이것을 의혼 또는 면혼(面婚)이라고 한다.
2. 납채(納采=四星)
납채(納采)란 사성(四星) 또는 사주(四柱)라고도 하며 신랑집에서 신랑의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를 일정한 종이에 써서 편지와 함께 신부집에 보내는 것으로 혼인을 청하는 의식이며 납폐(納幣)로 대신하기도 한다. 사성(四星)은 일정한 간지(簡紙)를 다섯 번 혹은 일곱 번 접어 그 한가운데에 쓴다. 그리고 붉은 보(紅褓)에 싸서 신랑집에서 전인(專人)으로 정중하게 신부집에 보내면 신부집 주혼자(主婚者)가 의관을 정제(定制)하고 소반위(卓上)에 공손히 받아서 서함(書函)을 개봉한다.
신랑집에서 편지와 사성을 신부집으로 보낼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편지와 사성을 받들고 사당에 가서 고한다. 다음으로 신부집에서도 전인(專人)으로 받은 편지와 사성을 사당에 고한다. 그리고는 나와서 편지답장을 써서 주고 음식을 대접한다.
돌아와서 답장을 전하면 신랑집 주혼자는 다시 이 사실을 사당에 고한다.
납채(納采=四星=四柱)를 보내는 뜻은 천간(天干) 지지(地支)에 의하여 궁합(宮合)과 앞으로의 길흉(吉凶)을 보고 또 혼례식 날짜를 정하는 택일(擇日)에 편리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은 형식을 갖추는데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청혼할 때 서로 생년월일과 시를 알아서 비교한 후에 허혼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3. 연길(涓吉)
연길이란 택일(擇日)과 같은 뜻으로, 사성을 받은 신부집에서 여자의 생리 기일 등을 고려해서 결혼식 날짜로 길일(吉日)을 택일하여 신랑집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사성 올 때 받은 서간문의 회답을 같이 써서 보낸다. 연길 서식은 납채(사성)와 마찬가지로 쓰되 그 방식도 현대화되어 여러 종류가 있다.
4. 의양(衣樣=衣製)
연길서장(涓吉書狀)을 받은 신랑측에서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를 신부측에 알리는 의양장을 보냈으나, 근래에는 이런 것이 생략되고 직접 양복점이나 양장점을 많이 이용한다.
5. 납폐(納幣)
연길서장과 의양서장이 끝나면 신랑집에서 혼례식 전에 신부집으로 신부용 혼수(婚需)와 예장(禮狀=婚書紙) 및 물목(物目)을 넣은 혼수함을 보내는데 이를 납폐(폐란 채단을 말한다)라 하며 일정한 격식을 갖춘다.
신랑집이 가난하면 청단(靑緞)과 홍단(紅緞)의 치마 저고리감만 넣으나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다른 옷감도 넣어 보낸다. 혼수아비(使者)로 하여금 혼사(結婚式) 전에 신부집에 도착한 혼수함을 신부집에서는 탁상(卓上)위에 받아서 주인(主人)이 개봉한다. 근래에는 혼수아비 대신에 신랑의 다정한 친구나 친지 중에서 함을 메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혼수 봉하는 법
혼수함 안에 청결한 종이를 깔고 함 밑에 예장(禮狀)과 물목(物目)을 넣은 다음 혼수를 차례로 넣는데 옷감을 접어서 함에 홍단(紅緞)을 먼저 담고 그 위에 청단(靑緞)을 담고 종이를 덮고 싸리나무 가지나 수수대를 사용하여 혼수감이 놀지 않게 하고 함을 닫는다. 이것을 다시 빨간 보자기(紅褓)로 싸되 네귀를 맞추어 싸매고 남은 귀를 모아 매고 종이를 감는다. 그리고 그곳에 근봉이라 쓰고 지고 갈 수 있게금 걸방을 맨다. 걸방은 무명 여덟자로 된 함질 끈을 마련하여 석자는 땅에 끌리게 하고 나머지로 고리를 만들어 함을 지도록 한다.
※봉치떡(봉채떡)
신부, 신랑집에서는 찹쌀 두켜에 팥고물을 넣은 찰떡을 만드는데 가운데 대추와 밤을 박아서 찐다. 이것을 봉치라 하는데 이 떡이 설지 않도록 정성껏 찐 뒤 시루를 마루 위에 있는 소반에 떼어다 놓고 이 위에 함을 올려 놨다가 지고 가게 한다. 또 신부집에서도 화문석을 대청에 깔고 소반에 봉치떡을 해서 함이 올 때 놨다가 함을 받도록 한다, 함을 받은 뒤에는 가운데 묻은 대추와 밤은 색시 주발 뚜껑에 퍼서 혼인 전날 색시가 먹도록 한다. 그러나 가문에 따라서는 봉치떡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함 지고 가기
함부(아들낳고 내외 갖춘 사람으로)는 홍단형을 입고 함을 지며, 서너 사람은 횃불을 드는데 이는 납폐는 반드시 어두운 때 행하였으므로 횃불로 앞을 인도하였던 것 같다.
여자집에 가면 여자집에 준비된 시루 위에 함을 내려 놓는다. 여자집에서는 함부와 같이 간 사람을 후히 대접한다. 대개 납폐는 전안(奠雁) 전날에 행하는 사람이 많은데 혹 날의 길흉과 또는 시세에 의하여 며칠전에 행하는 예도, 혹은 전안 당일에 행하는 집도 있다. 「사례편람」에는 혼사예물을 보내는데 있어서 적어도 두 가지로 하되 많아도 열 가지 이상은 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예를 닦는 데도 재물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과 공경으로 하라고 하였다.
문중자(文中子)에 이르기를 「시집가고 장가드는데 재물을 말하는 것은 오랑캐의 하는 일이라」하였다. 또 「가례원류」 납폐면 서문에는 「납폐는 간단하게 함을 좇는다」라고 하였다. 그것을 보면 우리 나라 예법에 따른 예식도 그 근본은 현재나 다름없이 무조건 성대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간결하면서 정중하게 하는 것이 혼례의식 절차라 볼 수 있다.
요즈음 혼례에 있어서 예물의 폐단은 막심하여 젊은이들에게 사치성과 허영심을 길러주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신랑집에서 보내는 봉채(封采)는 함속에 채단과 혼서지를 넣어서 보내는 것이 원칙이나 혼수함이 트렁크로 바뀌고 그 속에 넣은 물건은 가지각색 사치성의 물품들이 잔뜩 들어간다.
그리고 함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보더라도 옛날에는 거로가 정중하고 엄숙히 예를 치루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과다하고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악습이 생겨서 오히려 경사의 밝은 빛을 어둡게 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이런 점은 하루 바삐 시정되어야 할 것이며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납폐는 없애고 서로가 정중하고 엄숙하면서 기쁜 예식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되겠다.
6. 친영(親迎·婚行)
친영이란 신랑이 성혼(成婚)하기 위하여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여 오는 의례 절차이다. 친영에 앞서 양가의 준비를 순서대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⑴ 신부집의 사처(舍處)마련
신부집에서는 사처라고 하여 대문밖 서쪽에 신랑이나 나귀에서 내리면 잠시 쉴 곳을 마련 한다. 사처는 보통 이웃집의 깨끗한 방을 빌려서 쓰게 된다.
⑵ 신랑의 성복(成服)
신랑이 사모관대에 관복을 입고 묵화(墨靴)를 신고 예장을 갖추는데 이것을 성복이라 한 다,
⑶ 신랑집의 사당 고사(祠堂告辭)
신랑은 성복한 뒤 주혼자와 함께 사당에 가서 조상님께 고한다. 절차는 납채 때의 의식과 같다.
⑷ 신랑집의 부모 교훈
대례의 며칠전 또는 전날 아버지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앉히고 결혼의 중대성과 부부의 예에 관하여 엄숙하게 교훈을 하고 어머니도 역시 아버지의 교훈을 보충해서 여러 가지를 자상하게 가르쳐 준다. 특히 어머니가 성지식(性知識)이라고 해서 신부를 대하는 것도 이때 에 가르쳐 준다.
⑸ 혼행(婚行)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으나, 신랑은 말이나 나귀를 타고 신부집으로 간다. 수행은 신랑의 존속친(尊屬親, 보통 숙부나 백부) 중의 한 사람이 혼행을 거느리고 간다. 수행은 예법을 잘 아는 사람이 바람직하며 가까운 친척이 없을 때에는 평소 가까이 모시는 동네 어른도 무방하다.
⑹ 신부집에 도착
신부집에 도착하면 안내 받은 사처에서 대례시간까지 기다린다. 원래 혼례는 글자 그대로 해가 지고 나서 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시간을 맞추어 오는 혼행을 맞기 위해 하인들이 초롱불을 들고 십리 이십리까지 마중을 나간다.
⑺ 신부집의 사당 고사
신랑집 절차와 같으나 축문이 다르다.
⑻ 신부의 성복
신부는 원삼 족도리를 쓰고 양쪽 볼에 연지를 찍고 눈은 왜밀을 발라 뜨지 못하게 하는 등 마치 인형처럼 꾸미고 청색저고리에 홍색치마를, 그 위에 활옷(柚衣)을 입고 옆에 있는 수모(姆)의 부축을 받는다.
⑼ 신부집의 부모 교훈
신랑의 경우와 같다. 아버지는 딸에게 「공경하고 삼가고 주야로 시부모님의 영을 어기지 말라」 또 「배우고 또 배워서 여자로서의 예를 지켜라」하고 엄하게 훈계한다. 어머니는 특히 첫날방의 절차, 예법, 인사, 식사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가르쳐준다.
7. 전안례(奠雁禮)
전안례(奠雁禮)의 유례는 천상(天上) 북두구진(北斗九辰) 중에 자미성군(紫薇聖君)이 인간의 수복(壽福)을 맡은 천관(天官)으로 혼인도 자미성군이 마련한 것으로 믿고 기러기를 선물로 먼저 예를 드리고(옛날에는 산 기러기를 드리고 예를 행하였으나 근래에 와서는 나무로 만들어 대용으로 사용한다) 백년해로(百年偕老)를 맹세하며 수복과 자손의 번영을 비는 의식이라 한다.
전안례는 신랑을 맞아 대례를 치루는 제일 처음의 절차로 신랑을 신부집에서 맞아들이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신부집에서 예의에 밝은 이가 문전에서 신랑을 맞아 세 번 읍하는데 이때 신랑도 따라서 세 번을 읍해야 한다. 이때 신랑은 안고 있던 목안(木雁)을 안고 들어가 미리 준비 되어 있는 안상(雁床)에 놓는다. 신랑이 목안을 들지 않고 안부(雁夫)가 들고 들어가 안상에 놓는 경우도 있다. 목안을 안상에 놓으면 신랑은 탁자 앞에 꿇어 앉아 분향을 한 다음 하늘을 우러러 두 번 절을 한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신부집에서 가족을 대표하여 한 여인이 나와서 안상에 놓여있는 목안을 안아다가 신부 앞에 놓는데 이것이 바로 전안(奠雁)의 의식 절차이다.
이 절차를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신랑이 문전에 들어서면 원칙적으로 신부측의 주혼자가 나와서 정중하게 맞이해야 하는데 요즈음에는 신부측의 오빠들이나 친척 중의 젊은이 중에서 나와서 맞이한다. 그리고 초례상(醮禮床)을 놓는데 그 위치는 신부가 있는 방문 앞 마당에다가 병풍을 치고 놓는 것이 좋다.
주혼자나 신부측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신랑을 맞이하여 신랑의 앞을 서고 신랑은 인도하는 사람의 오른편 뒤를 따른다. 이때 신부의 부친이나 그 외 어른은 신랑을 읍하여 맞이해야 하며 신랑은 목안의 머리가 왼쪽으로 향하게 안고 전안석에 들어간다.
신랑은 전안석에 들어가 북쪽을 향해 꿇어 앉아야 하며 목안을 정안상 위에 올려 놓은 다음에는 꾸부리고 일어서서 뒤로 약간 물러나 재배를 한다. 그 다음에 신부측에서는 한 여인이 나와서 목안을 안아다가 신부앞에 갖다 놓으면 된다.
※참고 옛날에는 대사당일(大事當日)에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전안례(奠雁禮)만 하고 신부와 같이 신랑집에 와서 교배례 및 합근례를 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8. 교배례(交拜禮)
이 의식은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상면하여 서로 예를 교환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생면부지의 남녀가 중매를 통해 정혼이 되면 이 교배례의 의식에서 처음으로 상대방을 상면하게 되므로 이 교배례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뜻이 있다고 하겠다.
교배례의 식장 장치는 대청이 넓으면 그 대청에다 마련해도 좋고 차일을 치고 마당에다 마련해도 좋다. 마당에 차릴 때에는 동서(東西)로 놓거나 남북(南北)으로 놓아도 상관이 없는데 위치에 따라 편리하게 놓으면 된다.
교배상을 남북으로 놓으면 병풍은 동서로 쳐야하며 교배상을 동서로 놓았을 때는 남북으로 친다. 교배상에는 촛대 한 쌍을 세워 불을 켜 놓고 송죽(松竹)화병 한 쌍, 백미 두 그릇 닭 한 쌍을 양쪽으로 갈라놓는다. 이 때의 닭은 자웅이어야 한다. 세수 대야 속에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물 두 종지를 놓아둔다. 초례상의 진설은 지방에 따라 다르며 가풍(家風)에 따라 다르므로 풍속대로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교배례의 의식 절차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초례상의 진설이 동서로 되어 있을 때는 신랑은 동쪽에 서고 신랑이 동쪽편에 서 있으면 신부는 서편에 서야하며 만약 초례상이 남북으로 설치되어 있을 때는 신랑은 남쪽에 서 있어야 하며 신부는 북쪽에 서 있어야 한다.
신랑이 먼저 초례상을 마주하여 서서 읍하고 있을 때 신부가 들어 가야 하며 신부가 먼저 두 번 계속하여 절을 할 때 신랑은 절 한번으로 답례를 삼는다. 신랑이 절 한번으로 답례를 하게 되면 신부가 먼저 두 번 계속해서 절을 해야 한다. 이 때 신부나 신랑을 부축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그 부축하는 사람의 지시를 받아 이런 의식을 거행하는데 신랑은 절 한번으로 답례를 삼으면 된다.
이런 의식이 끝나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여 꿇어 앉고 신부도 신랑이 읍하고 끓어 앉으면 따라서 앉아야 한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수 대야를 신랑, 신부에게 주면 신랑과 신부는 종지에 담겨 있는 물로 손을 씻는다. 교배상의 진설방법을 그림으로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9. 합근례(合근禮)
교배례의 의식이 끝났으면 이어서 합근례의 의식으로 들어간다. 대례를 진행하는 집사자가 합근분치서부지전(合근分置서婦之前)하고 말하면 신랑과 신부를 시중드는 사람들이 표주박과 같은 술잔을 신랑과 신부 앞에 갖다 놓는다. 이 때 또 다시 집사자가 시자침주(侍者斟酒)라고 말하면 시중드는 사람은 신랑과 신부 앞에 놓여 있는 술잔에 술을 따룬다.
집사자는 술이 잔에 차면 서읍부거음(서揖婦擧飮)하고 말하는 데 이 때 시중을 드는 신부측 수모가 신부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어 신부에게 주면 신부는 술을 마시지 않고 잔을 받기만 했다가 그 술잔을 다시 수모에게 건네어 준다. 수모는 그 술잔을 받아 신랑측의 시중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 건네어 주는데 술잔을 받은 신랑측의 시중드는 남자는 그 술잔을 받아 신랑에게 주는데 신랑은 술잔을 받아 술을 조금만 마시고 술잔을 도로 시중드는 사람에게 건네어 준다. 이때 신랑으로부터 술잔을 돌려 받은 사람은 그 술잔을 상위에 올려 놓고 이번에는 신랑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어 신랑에게 건네어 준다. 신랑은 그 술잔을 받아 다시 시중드는 남자에게 주면 그 술잔을 받은 사람은 신부의 시중을 들고 있는 여인에게 돌린다. 신부의 시중을 들고 있는 여인은 술잔을 받아 신부에게 주는데 신부는 그 술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는 체 하고는 시중드는 여인에게 돌려 준다. 이 때 여인은 신부로부터 술잔을 받아 상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신랑과 신부는 술잔을 서로 교환한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이 의식이 끝나면 집사자는 진찬(進饌)하고 말한다. 이 말이 있으면 신랑과 신부의 시중을 들어 주는 사람들은 각각 안주를 집어 먹여 주는데 이때 신랑과 신부는 안주를 먹어도 좋고 먹기가 어색하면 받아서 상위에 놓아도 된다. 안주는 세차례 계속해서 집어 주어야 한다.
이 후에 축하객 중에서 축사가 있으면 축사를 하게 하고 축전이 있으면 집사자가 그 축전을 읽어 준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집사자가 대례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예필(禮畢)하고 말한다.
예필 선언이 있으면 신랑은 시중드는 사람의 인도를 받아 객실로 나가고 신부도 수모의 부축으로 자기 방에 들어 간다.
10. 신방
혼례식이 있은 후 신랑과 신부가 한방에서 처음으로 함께 지내는 방을 신방이라 하고 그 날 밤을 첫날밤이라고 한다. 밤이 되면 신랑의 자리는 동편 신부의 자리는 서편에 편다.
고례(古禮)에는 신랑의 자리는 신부의 하녀가 펴고 신부의 자리는 신랑의 하인이 펴고, 신랑이 벗은 옷은 신부의 하녀가, 신부가 벗은 옷은 신랑의 하인이 받고, 촛불을 물리면 하녀만이 문밖에서 모시고 있는다. 이것을 신방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 풍속에 신방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에 무슨 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호기심에서 나온 풍속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참고 전안례(奠雁禮) 및 교배례(交拜禮), 합근례(合근禮)의 순서를 차례대로 간단히 적어 본다. 그러나 가풍(家風)과 지방 풍속(地方風俗)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11. 상수(床需)와 사돈지(査頓紙)
상수(床需)는 신부집에서 혼례식이 끝나고 그 때 사용했던 각종 음식물을 신랑집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보통 혼례식 당일이나 우귀 때 보내는 데 이 때에도 상수송서장(床需送書狀)과 물품명을 기록한 물목(物目)을 보내게 되어 있으나 근래에는 생략하는 수가 많다.
물목은 육, 어, 주, 과, 포(肉魚酒果脯)의 순으로 적기로 하며, 이때 속칭 「사돈지(査頓紙)」라 하여 신부의 어머니가 신랑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으며 이 때의 음식솜씨와 편지 내용 등으로 자기집안의 범절을 평가받게 되므로 정성을 다한다.
12. 우귀(于歸)와 현구례(見舅禮)
우귀(于歸)란 신행(新行)이라고도 하며 신부가 정식으로 신랑집에 입주하는 의식이다. 옛적 관습으로는 초례후 수개월 심지어는 수년씩 지낸후에 우귀하는 예가 있었고 보통 이삼일씩은 신부집에 있었으며 첫날밤은 신부집에서 지냈다.
지금은 첫날밤을 신부집에서 지낸 다음날이나 또는 초례당일에 신랑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졌고 혹은 혼례식 당일에 예식장의 폐백실(幣帛室)을 이용하여 폐백을 올림으로써 우귀를 대행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갈 때 신부의 아버지가 아니면 친척중에서 가까운 분이 신부를 데리고 간다.
현구례(見舅禮)는 신부가 처음으로 신랑의 부모와 친척에게 첫 인사를 하는 의식으로 우귀일에 하는 것이다. 이때 신랑의 직계 존속에게는 사배(四拜)를 하고 술을 권하는데 그 외는 한번 절한다.
옛날에는 대청에 자리를 마련하여 병풍을 치고 시부(媤父)는 동편에, 시모(媤母)는 서편에 앉은 후 주안상을 차리고 배례하는데 시조부모가 생존하여도 시부모로부터 먼저 뵙고 다음 시조부모를 뵙게 되어 있으며 그후 촌수와 항열의 순서에 따라 인사를 드린다.
※ 참고 옛날식대로의 우귀행차는 다음과 같이 행한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떠날 때는 신부의 시중을 들어 주는 수모가 신부를 인도하여 가마 있는 데로 나오면 신랑은 미리 가마 문을 열고 읍한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이때 신부의 시중을 드는 수모가 「배운 것이 부족하여 예를 잃을 염려가 있읍니다」라고 말하면서 신부가 가마에 들어 가는 것을 도와 주어야 한다.
신랑은 말을 타고 앞서고 신부를 태운 가마는 뒤를 따르는데 신랑집에 도착하면 신랑이 먼저 내려 가마 앞에 읍하고 서 있을 때 신부는 가마에서 내려 미리 마련한 방에 들어가 쉰다. 그런 다음 신랑은 부모에게 무사히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게 마련이다.
13. 폐백(幣帛)
혼례식을 끝내고 신랑집(예식장일 때에는 폐백실)에서 행하는 의식으로 신부가 신랑의 가족을 정식으로 처음 대면하는 절차를 폐백이라 한다. 폐백에는 대추와 꿩을 쓰는데 대추는 시부에게, 꿩은 시모에게 드리는 것이다. 시부만 계시면 대추만, 시모만 계시면 꿩만 쓴다. 시부모가 안 계시면 폐백은 드리지 않으며 이와 같이 시부모를 뵙는 예를 현구례(見舅禮)라 하고 근래에는 예식장의 폐백실을 많이 이용한다.
이 절차가 끝나면 구식에서 말하는 우귀(于歸=新行)의 행사를 마치게 되는 것이므로 신부는 신랑의 가족으로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사위는 이튿날 신부의 부모(장인·장모)를 가소 뵙고 인사를 드린다. 신부의 집에서는 신랑을 맞는 것을 마치 손님 대하듯 한다. 사위 대접은 주로 닭을 잡고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
※ 폐백을 드릴 때 시부모가 신부에게 하는 교훈 및 전하는 예물
「너는 이제 내집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의 가례(家禮)와 가법(家法)을 지키되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잘 섬기며, 일가 친척과는 화목하여 우리 가문을 빛내어 다오. 그리고 아들 딸 낳아 우리 가문을 더욱 번창케 해 다오」라는 교훈을 한다. 또 시부모는 교훈과 더불어 금은 패물 비단 같은 것을 예물로 신부에게 주기도 한다. 물론 지나친 허례는 금물이나 조상 전래의 유물로써 신부에게 전할 것이 있거나 기념될 물건이 있으면 이 때 전해 준다.
※ 육례(六禮)
옛날에는 육례가 있어 납채(納采)·문명(門名)·납길(納吉)·납징(納徵)·청기(請期)·친영(親迎)의 여섯 가지 계단을 밟아 청혼을 밟아 청혼을 하고 혼례를 지냈다. 그러나 근래에는 간소화 되어 중매자를 통하여 언정(言定)이 되면 신랑집에서 먼저 사성(四星)과 사성 서간문(書簡文)을 신부집에 보내고 신부집에서는 합당하다는 뜻으로 허혼 편지와 연길(涓吉)을 써서 신랑집에 회답하면 혼인이 성립되는 것이다.
① 납채(納采)―신랑될 사람의 집에서 신부될 사람의 집에 혼인할 것을 청하는 의례로써 지금은 납폐의 뜻으로 통용된다.
② 문명(門名)―신부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물어 아는 것을 말한다.
③ 납길(納吉)―신랑집에서 혼인 날을 받아서 신부집에 보내는 것.
④ 납징(納徵)―납폐를 말하며 혼인 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⑤ 청기(請期)―혼인할 때에 신랑집에서 택일을 하여 그 가부를 묻는 편지를 신부집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⑥ 친영(親迎)―신랑이 신부를 친히 맞음을 말하며 옛날에는 대사당일(大事當日)에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전안례만을 행하고 신부와 같이 신랑집에 와서 교배례 및 합근례를 행한 경우도 있었다.